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연출: 김민정 / 제작: 달 컴퍼니
작곡작사: 윌 애런슨 & 박천휴
출연: 강필석,이지훈(서인우), 임강희,김지현(인태희), 이휘종,최우혁(임현빈)
관극일시 및 장소 : 08.23 20시 & 08.26 15시(세미막) / 세종M 시어터
0826 세미막 페어: 강필석, 김지현, 이휘종
오랜만에 후기를 다시 쓴다. 기계적으로 관극만 하다가 여름 동안 잠시 지쳐서 표를 놓고있었는데, 친구가 '번점 대박' 이라며 데려가줬다. 언젠가 한 번 봐야지, 봐야지하면서 미루고 있었는데 드디어 접한 번점은 진한 여운을 남겨줬다.
사실 좀 귀찮았던 것도 있다. 졸업 준비며, 진로 탐색이며 기타등등 현생에 치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작 번점을 볼걸 그럼 진짜 현생 좀 잊고 살 수 있었을텐데(응?)
오늘자 캐스팅 보드 ↓↓↓
.
.

뻘소리지만 끝나고 나오는데 캐슷보드 갈고 있으니까 괜히 눈물나더라...nn번 회전 돈 것도 아니고 겨우 며칠 전에 시작해서 자둘자막으로 보내는 주제에 뭐 그렇게 유난떠냐 싶으면서도 너무 슬펐던ㅠㅠㅜ
포토존 티켓샷↓↓↓
.
.

여운이 안 가셔서 괜히 한 번 올려보구요.... 아 번점 어떻게 보내지ㅠㅠㅠ돌아와 돌아오기만 하면 하자는대로 다 한다
.
.
.
.
여기서부터는 후기!
극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끄적인 글을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읽기 편한 글은 아닐 수 있다.
너무 늦은 후기라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일단 기록용으로라도 올려본다.
/ 대폭 수정된 불편했던 장면들 /
(1) 성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거나 성적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가사, 대사 수정
- 초연(2012), 재연(2013)은 연뮤에 큰 관심이 없어서 못 봤지만, 번점 넘버만큼은 꽤 오래 전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눈에 띄었던 장면은 1막 2장 '그런가봐'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은~ 라고 시작하는 가사를 너희들은~ 우리들은~ 쟤가~ 로 바꿨더라. 특정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개인의 특징으로 축소시켜 설명한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또 현빈이 혜주에게 속옷 선물하는 장면 대신 노란 뱀으로 장난치는 장면으로 수정되었음.
- 2막에서 넘버 ‘겨우’ 중 현빈이 혜주에게 “한 번만 만져보자, 네 가슴”라고 하는 부분도 누드화를 그리는 것으로 대체. 있는 그대로의 너를 그리는 거라는 설명도 붙었다.
- 남친 여친보다는 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특히 더 좋았다.
(2) 캐릭터 설정 조정
- 먼저, 인우와 인우 아내인 소현씨의 관계 설정이 수정됐다. 우선 가정주부에서 커리어우먼으로 바뀐 것 하나.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소현씨는 태희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인우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그려졌으며 그에 따라 재연 때 '비난' 넘버에서 하던 '당신이 지금 하는 걸 사랑이라고 하지만 내게도 했던 그 말 더럽고 끔찍해' 라는 가사가 사라졌다. 이쯤되면 속으로 끅끅 오열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가사로 바뀌었는지는 잘 못 들었다(아시는 분 알려주시면 감사드립니다). 인우 아내 배우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 제자여서라기 보단 그 사람이 태희라는 것 때문에, 결국 나는 이렇게 애썼지만 네가 찾는 사람은 태희구나...라는 체념, 슬픔이 섞인 투로 부르더라.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인우가 소현씨를 사랑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등 떠밀려 결혼하지 않았나 싶은데....그 이유는 소현씨가 자신한테 소홀히 하는거 아니냐고 장난스레 물었을 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답하는 인우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또 소현씨가 “나한테 할 말 없어?”는 대사를 통해 사랑한다, 힘든 일이 있다 등 부부 사이에 있어야할 당연한 교감을 원한다는 말을 던졌으나 인우는 이에 답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인우의 결혼생활이 정말 소현씨를 사랑해서 이뤄진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음. 뭐 자세한 내용은 배우가 어떻게 설정했는지 모두 알 수는 없으니 개인적인 상상으로 남겨둔다.
/ 퀴어물? /
번점을 퀴어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퀴어가 등장한다고 해서 다 퀴어영화가 아니듯이(대표적인 예시: 아가씨, 메소드 등...) 번점은 캐릭터 관계설정 중에 동성애적인 설정이 있을 뿐 장르가 퀴어극인 것은 아니다.
번점에서 포인트를 맞추는 영역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동요. 퀴어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그저 첫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갈등으로 작용할 뿐이다. 퀴어극, 퀴어영화 등으로 이름붙일 때 중요한 점은 영화의 메시지가 주인공이 퀴어이기 때문에 겪는 여러 사회구조적 폭력에 초점이 맞춰져있느냐인데, 번점은 그저 인우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릴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겠지.
/ 캐릭터 /
(1) 촘촘하게 엮인 캐릭터들
어떤 ‘더쿠’가 말했듯 번점은 ‘이해가 안 될 때 배우가 관객 감정을 멱살 잡고 끌어가는’ 극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극에서 펼쳐지고 있으나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이 캐릭터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자연스럽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즉 그만큼 캐릭터 형성이 촘촘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번점에서는 쓸모없는 캐릭터가 없다. 인우, 태희, 현빈은 물론이고 2학년 5반 친구들 재일이 욱기 등 모두가 필요한 존재다. 그들이 함께한 만들어낸 안정된 공간이 어그러지기 시작하면서 극적 갈등이 생겨난다. 반 친구들, 대학 동기들, 애인사이, 결코 망가지지 않을 것 같던 끈끈한 결합이 ‘이상한 소문’(넘버 제목)의 시작과 함께 균열이 나기 시작하고 긴장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죽음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이 2학년 5반 학생들에게 마음을 뺏기는 첫 순간, 이들이 만들어낼 소용돌이에 정처 없이 휩쓸리게 될 것이다.
(2) 번점 장인 강필석 배우님..그냥 서인우이신 분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흥미로운 스토리,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캐릭터 형성, 걸맞는 배우 캐스팅! 삼박자가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면 된다.
초연 때부터 함께했던 배우님이라 그런지 위화감이 전혀 없다. 그냥 서인우 = 강필석. 본인도 이 극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니 말 다했다. 유약해보이는 이미지와 선한 눈, 작은 입매,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우를 표현하기에 딱이다. 그치만 또 환생한 태희를 보고 혼란에 빠지면서 멘탈 바스라지기 시작할 때는 자신도 자기를 주체할 수 없어서 휘청거리는 인우를 제대로 표현한다. 찰떡......다시 와주세요........(앓)
/ 그럼에도 남는 의문 /
번점은 매우 민감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남성과 남성의 사랑, 선생과 제자, 성년과 미성년의 관계의 운명적 사랑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과 제자라는 공적인 관계에서 과연 사랑을 할 수 있는가. 심지어 선생이 먼저 제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다른 제자들이 눈치챌 수 있을만큼 드러나는 상황이 과연 상식적인 선에서 납득 가능한가를 물었을 때 쉬이 답하기 어렵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다. 공연을 보는 도중 이 지극히 당연해보이는 상식이 감정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이유는 인우가 쌓아온 드라마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태희를 만나기 이전의 삶, 이후의 삶, 태희를 잃고 난 이후의 삶이 어땠을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참맛은 바로 이 드라마의 힘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뒤늦은 후기도 다 썼으니 이제 맘 편히 보내줘야지ㅠㅠㅠ 안녕 인태희, 안녕 서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