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물함>

연출 : 구자혜 / 작: 김지현

출연: 김윤희(다은), 이리(한결), 정연주(연주), 정원조(재우), 조경란(혜민)

주최, 제작 : 국립극단


부끄럽지만 처음 예매할 때, 청소년극이라고 해서 정말로 청소년이 출연하는 극인줄 알았다. 오늘 프로그램북을 보는데 연출의 말에 '무대에서는 누구나 될 수 있으니까요'라고 쓰여있길래 새삼 부끄러워지더라. 그래 무대에서는 아무나 될 수 있는데 왜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을까.. 


다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극은, 사실 조금 어색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국립극단 특유의 사실반극적반 느낌의 작품. 국립극단에서 올라오는 작품들은 <말뫼의 눈물>에서도 그랬듯, 적당히 사실적이면서도 적당히 극적인 무대연출을 하는 작품을 선호하는 듯. 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 내 느낌이다! 나는야 편견왕!




/ 청소년극 /


<사물함>의 모든 등장인물은 청소년이다. 그들은  모두 강한 계급성을 띈다. 한결은 건물주의 딸, 다은은 청소년알바노동자, 연주는 다은과 (아마도) 비슷한 입장의 친구,  재우는 중산층 부모의 아들, 혜민은 자영업자 편의점주 부모의 딸. 그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부모와의 연결성, 의존성이 강하게 드러나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는 객체로 그려진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극'이라는 타이틀을 단 것에는 손색없었다는! 아주 긍정적인 평을 내린다. 보통 '퀴어극', '여성극' 처럼 소수자성을 강조한 극에서 캐릭터들이 그들의 소수자성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물함>에서는 그런 점에서 매우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 사물함 /

 

사물함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다은이가 먹다 남긴 폐기? 급식에서 남아서 싸온 음식? 물에 젖은 체육복? 

제목만큼 극에서 사물함에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아쉬움은 제목 그 자체에 있다. 다은이의 죽음이 너무나 명백한 책임소재를 향하고 있는 이상, 그의 사물함이 그렇게나 큰 물음표가 될까? 왜 하필 사물함을 제목으로 삼았을까. 


아마도 연주가 한결, 재우, 혜민 사이에 들어오는 계기, 그들의 굳게 닫힌 사물함 같은 계급성을 뚫고 들어오려는 것을 표현했던 것 같은데, 음 적절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일부러 혜민이가 사물함 비밀번호를 바꾸지만 그들에게 파고들려는 연주는 어떨까?



/ 무대, 배경음 /


사다리꼴 무대. 3면으로 둘러싸인 좌석이 특이했다. 왜 굳이 사다리꼴로 만들었을까? 사다리꼴 무대가 쓰인 이유를 잘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냥 지금 생각하기로는, 직사각형이 되지 못한 불안정한 사다리꼴을 표현하려고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만. 맞나? 아, 그리고 무대구성이 신기했음. 장소가 뒤섞이고, 오르내림이 자유로웠다. 


요즘 본 극에서는 음악이 감정선에 따라 표현되는 연출들이 많았었는데, <사물함>에서는 장소가 바뀜에 따라 배경음이 달라지는 정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재밌었다는? 하지만 배우들 감정선이 그렇게 섬세하지 못한 상태에서 배경음마저 잔잔하니까 살짝 건조한 느낌이 들긴 했다. 음...연기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그 빈 공간을 연출적으로 채워줬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오히려 극작에 집중할 수 있었나보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 보다는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장점 아닌 장점?



/ "네가 죽었어도 이렇게 조용할까." /


극작은 사실 완성도있다고 보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너무 직접적인 말과, 문어체적인 말투가 조금 거슬렸다. 그리고 중의적인 대사를 사용할 때, (ex. 한결이 게임하다가 "너 때문에 죽었잖아!"라고 할 때) 살짝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일부러 그 장면을 넣으려고 저 대사를 썼구나, 하는 느낌? 다만 그 장면장면들을 잇는 연출이 좋았다. 특이했던 건 장소가 바뀔 때 인물들이 서 있는 장소와 조명이 바뀌면서 그들의 미묘한 긴장이 드러났었다. 혜민이 사다리꼴 경계에 서 있다가 다은이 중앙으로 등장해서 혜민과 다은의 연결점을 드러낸다든지, 아니면 마지막에서 그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상태에서 다은이가 중앙에 들어온다든지 하는 것들? 공간 활용이 좋았음. 


아무튼, 네가 죽었어도 이렇게 조용했을까 라는 말은 사물함을 관통하는 말이다. 캐치프레이즈로도 사용됐던 대산데, 한결이네 할아버지가 소유한 건물에서 편의점을 하는 혜민이, 그 사이에 있지만 아무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자기 일상을 지키려는 재우 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대사다. 자본가와 자본가의 편에 선(노동자에게서 등돌린) 자영업자, 그리고 아무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중립을 지키려는 중산층 모두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동시에 연주는 그들과 같은 계급으로 평가받고 싶어하기도 한다. 연주는 이런 현실을 마치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대한다. 그럼에도 그들과의 연줄을 놓고싶지는 않았겠지. 연주의 이중적인 마음과 한결, 혜민, 재우의 자본가적 태도는 암암리에 부딪히여 극의 긴장을 쌓아간다. 



/ 총평 /


물론 배우들의 연기합이 매끄럽지 않았고, 감정선 처리가 섬세하고 보기는 어려웠으며, 극작 역시 완성도 높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이 의미있는 것은 그 불안정한 덩어리들을 이어가는 장면전환과 '청소년극'이라는 소수자성을 큰 비판점 없이 잘 소화해냈다는 점이다. 일부러 '고딩'스러운 워딩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도 꼭 청소년스럽지 않기 위해서 선택했던 어투였던 것 같다. 배우들 역시 일부러 소위 '청소년'스러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많은 행동언어를 고민했던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좋았다. 

한 마디로 소수자극으로는 배울 점이 많다! 볼까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괜찮았다.

 

 

 

연극 <행복한 날들>


 

공연: 프로젝트 쌍시옷 X 송정안(연출)

 극작: 원작<Happy Days> 사무엘 베케트, 아일랜드, 1961

출연: 강정임(위니), 윤성원(윌리)

기획/제작 :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 6기동인, 고주영, 이도원


(관극일시 및 장소 : 18/04/26 20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사실 에쿠우스보다 하루 먼저 본 작품인데 이제 후기를 끄적여본다.

 

 

'세월호 2018'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기획한 시리즈형 공연 프로젝트인데,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혜화동 1번지 6기 동인을 초청해서 공연하나보더라. 정확한 프로젝트명은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기획초청공연 세월호2018>이고 캐치프레이즈는 세월호로 우리의 세계는 재구성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얼마 전 세월호 4주기 집회도 3주기랑은 다르게 크게 문제제기한 부분이 없어서인지 평범(?)하게 지나갔는데, 이렇게 다시 끌어올려주니 반갑고 고맙고 그렇더라. 물론 내용을 봐야 알겠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세월호에서 첨예하게 다뤄야 할 이슈들이 무뎌지면서 슬슬 다시 가라앉고 있는데, 좀 다시 띄워올릴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집회 있기 전 박근혜 공판도 있었는데 묶어서 좀 첨예하게 투쟁하지 못했던 게 아쉽긴 했다. 아무래도 불을 지필 이슈가 없으니 섣불리 힘을 집중하기 어려웠을지도.

 

 

 4,5월에 마냥 습관처럼 연극계에서 다뤄지는 세월호, 광주항쟁이 그저 기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슬픔에 매몰되거나 사건에서의 정치적 이슈를 건드리는 것 이상으로, 관객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정서로 이어지게 만들 수 있어야 역사도 살아있는 것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정치적 이슈를 담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연출가들은 자신이 어떤 관점으로 사건을 볼 것인지, 이를 위해선 작품에서 겨누는 대상이 누구냐를 잘 설정해야 할텐데, 그런 관점에서 <행복한 날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1. "행복한 날이에요"

위니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행복한 날이에요~라는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땅 속에 몸 절반이 묻히고, 그럼에도 아주 사소한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너무 절절해보였다. 칫솔에 쓰여진 지워져가는 글자를 읽으려고 애쓰고, 보이지 않는 저 뒷편에 잠들어있는 남편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기상벨이 울리고 나서부터 취침벨이 울리기 전까지 길고 무료한 시간을 채워넣는 것. 어떻게든 지치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말하고, 가방에서 차례차례 칫솔, 빗, 거울, 립스틱, 모자를 꺼내 몸단장을 하고, 행복할 요소를 찾고, 삶을 메워가는 위니.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살아가는게 인간이라고 하는 그 대사가 너무 슬펐다. 정확한 대사가 기억나면 좋으련만


2. 세월호와 행복한 날들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에서 위니가 과거를 회상할 때, 그 때 묘사하던 끔찍한 비명이 아직도 머리에서 맴돈다. 우리는 권력에 의해 무너지고 망가진다. 그리고 우린 또 살아가겠지. 살아지는 것인지 살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3. 총평

좋은 극작! 좋은 극! 좋은 독백! 

하지만 너무 안 좋았던 내 컨디션때문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던게 너무 아쉽다.. 며칠 지났다고 극 디테일을 싹 잊어먹어버렸음ㅠㅠㅠ아쉬워라.....공연 만드신 분들께도 정말 죄송하다......극은 컨디션 좋을 때 봅시다!!

 





<에쿠우스>

제작: 극단 실험극장, ()수현재컴퍼니

: 피터 쉐퍼 Peter Sheffer / : 신정옥 / 연출: 이한승

출연: 안석환(다이사트), 정휘(알런), 이서림(해스터), 서광일(프랭크), 김효숙(도라), 한은비()

 

 

   TK 수업에서 곧 에쿠우스를 다룰텐데, 내용도 뭣도 몰라서 일단 보자!하는 생각에 무작정 예매했던 <에쿠우스>. 시험 끝나고 두번째 관극이라 아직 극 보는게 쌩쌩하다. 역시 아직까진 현생보단 극이라, 극이 현생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잡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음. 그치만 내 꿈인데 어떡해!

 

   아무튼, 어제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관극을 하니 힘이 솟아나는 기분. 신나게 관극 다녀와서 카톡회의 한 판 하고 맥주 마시면서 쓰는 후기란....정말 인생을 보람차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함ㅋㅋ이런게 보람찬거면 진짜 세상 살기 편하겠군. 어따 써먹을지 모를 학점 관리보단 차라리 관극후기 상세하게 쓰는 게 내 인생에 훨씬 도움 되니까 뭐.

 

   아, 이걸 꼭 기록해놔야하는데 관극 전에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음. 에쿠우스 플북을 사려는데 현금으로만 결제가 된다는 것임. 40주년 기념 공연이라 그런지 플북에 에쿠우스 관련 지난 공연 자료나, 여러 분석문이 들어 있는 좋은 플북이었데 하필 오늘 현금을 안 들고 갈게 뭐냐. 아쉽게 포기하고 플북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아저씨가 뒤에서 툭툭 치더니 계좌이체! 하면서 플북을 내 품에 턱 안겨주는 거 아닌가? 너무 당황해서 응 뭐지 이 분(왠지 어디서 본 것 같으다?)하면서 아아 하는 사이에 에쿠우스 플북은 내 손에 고이 담겨있고 그 분은 내 티켓봉투에 계좌번호를 써주시면서 이체하라고 계좌번호를 써 주심. 감사한 마음에 바로 이체 하는데...!아니 성함이 이한승????아니 대표님 왜 여기에 계시는거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아니 극단 대표님이시니까 여기 계시겠지만 너무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타나서 너무 자연스럽게 계좌이체를ㅋㅋㅋㅋㅋ참.....이 기회를 천운삼아 나 연극하고 싶다고 어필할까 했는데 대표님 너무 바쁘셔서 인사만 건네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아쉽.

 

   아무튼간 그래서 덕분에 관극 잘 했고, 플북을 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치만 기대하고 봤던 에쿠우스는 생각보다 정말 내 취향 아닌 극이었고, 이런 주제를 가진 극이 브로드웨이에서 <세일즈맨의 죽음> 최장공연 기록을 깼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차근차근 말하겠다. 이번에도 역시 내맘대로인 분석/감상 카테고리를 통해서!

 



1. 무대

 

원형무대, 가운데 사각형의 플랫폼이 있고 그 주변 공간이 다이사트가 독백하는 공간. 그리고 그 영역 밖에 배우들이 대기하는 공간이 있음. 그래서 배우들은 등장하지 않을 때에도 무대 위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음. 연극이 실제가 아니라 연극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배우의 캐릭터 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이런 형태의 원형무대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흥미로웠다.

 




2. !

 

   제목이 인 만큼, 이 극에서 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극작에 사람이 사람스럽게 보이는 동시에 말을 나타내야 한다는 어려운 주문이 있는 만큼 <에쿠우스>를 잘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이 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도 있겠다. 2018년 실험극장 프로덕션 <에쿠우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닥이었다.


   연극 <선을 넘는 자들>에서 dmz에 사는 사슴을 사람으로 표현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 때 사슴배우의 근육만큼 말배우들의 근육이 짐승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사슴과 말은 근육이 다르고 연출해야 하는 느낌도 다르지만, 말 특유의 힘찬 근육과 묵직한 위압감, 그와 동시에 느껴져야 할 날렵함이 조금씩 모자랐달까. 그건 아마도 경직된 말들의 몸짓 때문일수도 있겠다. 말들의 동작이 더 무겁게 느껴졌으면 좋았을걸. 다그닥거리는 말 특유의 몸짓과 투레질하는 소리, 그와 함께 나오는 고갯짓을 참 잘 살렸어서, 말들이 백에서 무대로 등장하는 순간마다 보는 맛이 쏠쏠했지만, 이내 재미가 깨지곤 했다. 말이 알런을 압도하거나 알런이 말을 종교적으로 대할 때마다 말이 팔을 들어 엑스자로 교차하는 그 행동을 보였는데, 그 행동은 뜬금없이 너무 인간적이어서 종종 몰입을 방해했던 것. 대체 그 팔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극작에 나온 동작인건지, 아님 안무가가 만든 동작인건지 궁금했다. 극작에서 명시된 동작이라면...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살리려고 그랬을 거다, 고 최대한 좋게좋게 이해할 수는 있겠다만 안무가가 짠 동작이라면......


   아무튼, 코러스들 몸이 매우 좋았고 눈호강을 톡톡히 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정말 말처럼 보였냐는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 동작 때문이 아닐까. 뭐 굳이 좋았던 점을 꼽자면 1막 마지막 장면, 알런이 밤의 들판을 달리며 말과 자신만의 종교적 행위를 했던 그 해방씬? 연출은 나쁘지 않았지만 조금 뻔하고 올드한 감이 없잖아 있었으며, 배우 말이 안 들려서 절정이 절정답지 못했다는 게 흠이지만(이 정도면 다 흠인가) 그냥 말은 좋았다. 물론 안무가 살짝 올드하기도 했지만...좀 더 현대무용스러웠으면 좋았을걸. 차라리 내달리는 움직임을 강조하던지. 무거운 몸이 내달리면 얼마나 멋진데 말야.

 



3. 극 주제

이성, 인간, 정장, 아폴로, vs 본능, 짐승, 나체, 디오니소스

 

   참 진부한 이분법이고, 참 진부한 저항이다. 이성과 본능을 구분하고 그 사이에서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정말 전형적인 서양식 이분법 철학으로 점칠된 상징들. 지긋지긋하다 정말!! 왜 이런게 명작인거야! 차라리 세일즈맨의 죽음이 훨씬 더 낫다! 그 속에선 적어도 정신과 육체를 나누는 짓거리는 하지 않아!!!그리고 윌리한테는 현실인식이라도 있단 말이다. 알런은 현실 인식은커녕 자기인식조차도 못하고 그냥 다 싫다고 찡얼대면서 말이나 타고 앉았고. , 알런은 정말 자기가 있는 힘껏 살아본 적이 있을까. 종교인 어머니와 사회주의자 아버지 사이에서 알런이 배운 것은 정말로 이상 덩어리에 불과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까먹었다 무슨 성경 속 인물이었는데)~의 아들 에쿠우우우우스!!라고 하는거겠지. 알런한테는 자기가 없으니까. 그 두 이상 사이에서 태어난 저항 덩어리. 인간의 본질엔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차라리 인간보다 짐승을 신격화하는 대안을 택했던 바보같은 알런. 그리고 그런 알런을 부러워하는 다이사트. 뭐냐 이게. 종교랑 사회주의에서 이상을 찾을 수 없으니까 차라리 말을 최고가치로 삼자고? 이 바보 같은 수동적 회의주의는 도대체 어디서 생성된걸까. 이런 주제를 가진 극이 <세일즈맨의 죽음> 최장공연 기록을 깼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열이 안 풀려서 덧붙이자면, 사실 현실은 알런이 생각하는만큼 이성중심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가 하는 저항은 소위 일기쓰기식 한풀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혼자서 몰래, 그것도 밤에, 아무도 보지 않는 들판을 열받아서 나체로 말 타고 뛰어다니는 행위가 저항인가? 그냥 열 받을 때 노래방에서 한 시간 동안 소리지르는 행위의 고급진 버전 아니냔 말이다. 거 참 이해할 수 없어..독하게 말하자면 이건 그냥 자위다. 뭐 진짜 말한테 성애적 감정을 갖는 것 같기도 하다만....그걸 떠나서 이건 그냥 정신적 자위행위에 불과하다고.



 

4. 연기

 

   정휘 배우님 발성이 좋지는 않더라. 1막 마지막 장면 시원하게 터져나와야 할 카타르시스가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정휘 배우 목소리가 안들렸기 때문. 빠르게 회전하는 회전무대, 점점 커지는 배경음 볼륨, 시원하게 내달리면서 무대를 가득 압도하는 말들!!!!그들이 내뿜는 거대한 에너지를 그대로 받아올려 시원하게 내질러야 할 알런의 외침이!!!!!전혀! 들리지 않았다! M열에 앉았었는데, TOM관 그렇게 크지도 않은 극장에서 왜 그렇게 뚫지를 못하니. 1막에서 터지지 못한 절정은 2막에서도 그냥 그렇게 이어졌다. 정휘 배우, 마스크랑 바디는 참 알런스러웠는데 조금씩 모자라서 아쉽더라. 난 좀 더 광기어리고 더 섹시하고 더 저항적인 알런을 보고싶었는데.

  그리고 안석환 배우님 살짝 올드한 연극투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어투.

 




5. 기타....그리고 최종감상

     

   관객들 수준이 너무 별로였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막 엄청 고급진 관극러는 아니다만 최소한 관극 예의는 지켜줘야할 것 아닌가. 말 대신 사람이 나온다고 오와 히익 하는 숨소리를 내지 않나, 키득거리면서 웃질 않나, 자기가 좋아하는 장면에서는 옆 사람하고 소곤소곤 얘기하질 않나, 심지어 반딧불이도 있었다. 와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무대에서는 알런이 자위하고 있지, 그 옆에선 다이사트가 알런 부럽다고 하고 있지, (뭐가 부럽냐 멍청아!) 말은 이상한 안무나 추고 앉았지, 배우 말은 안 들리지! 관객들은 떠들지!!

 

   화가 났다. 그것도 정말 많이. 관극 한 지 4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난다. 이따위 자위극이 명작 반열에 올라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포스트모던 지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데카르트적 이분법 얘기하고 앉았는지 모르겠다. 그 속에서 뭘 뽑아먹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난 이런 회의주의 가득한 극 진짜 싫다. 다음 주 수업에 에쿠우스 다룰텐데, 그 때는 또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2018년 실험극장 프로덕션 <에쿠우스>는 별로였음. , 다음 주 수업 후에는 또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연극 <말뫼의 눈물>


주최: 국립극단, 극단 미인

연출/: 김수희

출연: 남미정 / 남문철, *정나진(더블캐스팅) / 이정은, 박성연, 조주현, 최정화, 권태건, 김규도, 전익수, 편규상


(관극: 18.04.13, 19:30분, 백성희장민호 극장)

 

골리앗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팔려왔다. 포스터와 공연 설명만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듯 이 극은 조선소 노동자 파업투쟁 얘기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미있는 극이었고 투쟁하는 노동자의 삶 뿐만 아니라 투쟁 지역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갈등을 잘 짚어냈다. 하지만 너무 길었고, 불필요한 설명이 많이 않았나 하는 생각이...들었음. 내가 투쟁 현장에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진부하고 사실적인 극을 싫어해서 그런 걸수도 있다. 


아무튼, 의미있었지만 길었고 사실적이었지만 연극적이었다.


자세한 글을 시험 끝나고 다시 쓸 예정. 현생 죽어라! 


이번엔 기간 꼭 놓치지 말아야지ㅠㅠㅠ시험 기간이라 불안하지만 정말로 안 잊어버릴테다




아르코 . 대학로예술극장 SNS(네이버포스트페이스북)에 "아르코기자단 1기"를 모집합니다
공연예술에 관심 있는 20대 이상 국내 거주자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합니다.

<활동 기간>
2018년 5월 1일 ~ 8월 30일
(발대식은 4월 중)

<활동 내용>
- 아르코 . 대학로예술극장 공연 리뷰
- 아르코 . 대학로예술극장 소개 콘텐츠 작성
- 대학로 핫플레이스 소개
- 매달 정기 모임 참여
- 매달 1~2회 원고 작성

<활동 혜택>
- 기자증 및 명함 지급
- 수료증 제공 
- 아르코 . 대학로예술극장 공연 관람 (사전 협의된 공연에 한함)
- 씨어터카페 20% 할인 제공
- 공식 웹진 우수 콘텐츠 업로드
- 우수 콘텐츠 연간 모음집 발간
- 1기 우수 기자 연임 기회 제공 및 소정의 상품 제공

<모집 대상>
- 대학로 인근 거주자
- 공연 및 예술계열 관련학과 및 전공자
-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자
- 카드뉴스, 웹툰, 영상 콘텐츠 제작에 관심 있는 자

<모집 기간>
모집 : 2018년 3월 28일 (수) ~ 4월 20일 (금)
발표 : 4월 25일 (수) - 개별연락

문의사항 : lhr@jrepertory.com



관련 링크 : http://theater.arko.or.kr/CustomerService/Notice/Index#pageIndex=1&articleId=169384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제작: 신시컴퍼니 / 출연 : 심현서(빌리), 최정원(윌킨슨), 최명경(아빠), 홍윤희(할머니), 곽이안(마이클)


(관극: 18. 03. 28. 20시,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역시 후기는 한꺼번에 쓰는 맛!






내가 아는 상업 뮤지컬 중 투쟁과 예술의 조화를 보여주는 유일한 뮤지컬인 듯 했다. 우려했던 것처럼 단지 스타 라이징으로 투쟁을 유야무야 끝내는 극이 아니었다. 파업 힘내라는 오디션장 안내원의 말, 파업현장에서 경찰과의 치열한 투쟁, 빌리가 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불꽃튀는 춤을 추었던 것. 그 모든 장면이 당시의 처절했던 노동자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었다. 



빌리가 빌리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를 알아보고, 도와주고, 힘을 합쳐서 돈을 모아주었던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빌리가 투쟁하고 파업했던 광산노동자들 사이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빌리가 빌리일 수 있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그를 믿었기 때문에 비로소 빌리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자존심을 세우며 아빠가 자기 혼자 해결하겠다고 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뭐 극의 재미를 위해 넣었다고 치자. 



결국 빌리는 성장했다. "나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겠지."라는 윌킨슨 선생님의 말처럼 빌리 역시 앞으로도 많이 변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자랄 날이 많이 남은 아이가 주인공인 이유는 바로 그 자랄 날을 미지로 남겨두기 때문인 것이다. 부디 처음을 잃지 않길. 엄마에게 편지했듯이 지금의 빌리 모습 그대로. 아니 멈춰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불꽃 튀는 그 마음 그대로 열심히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Yerma>

 

 

영국 National Theatre 2016년 프로덕션, Simon Stone 연출, Federico Garcia Lorca , Billi Piper 주연

 

(관극 : 18. 03. 27,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국립극장에서 NT Live를 상영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이리저리 재밌는 극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품이었는데 트레일러가 매우 흥미로워서 충동적으로 예매. 극장에서 스크린을 띄우고 공연을 상영 한다는 게 재미있어서 처음 도전해본 관극(-이라고 하는게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공연 실황을 촬영한 건 맞으니까-)이었다.

 

  

자리는 고민하다 달오름극장 F열을 선택했고, 나쁘지 않았다. 다만 스크린이 예상보다 컸고-무대부터 실링바 바로 아래까지 전부 스크린이었다! 마치 아주 좋은 옛날 영화관에 온 듯한 기분-, 배우의 얼굴이나 몸 전체를 클로즈업에서 촬영한 부분이 많았어서 F열보다 더 뒷자리를 선택했어도 좋았을 것 같았음.

 

 

 

예르마는 보고 나와서 매우 진빠지고 혼란스러웠던 극이었기 때문에...나름대로 극에 대한 감상과 분석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에 플러스 현생이 너무 바빴음ㅠㅠ이번 주에 책만 4권 읽어야 했단 말이다) 영화적인 기법이 사용된데다가, 시간의 흐름을 장면장면으로 끊어서 제시해주는 형식이었던만큼 서사를 따라가면서 극을 이해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서사가 아닌 몇 가지 키워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혹은 특징적이었던 요소들을 통해 감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 유리벽 /  예르마의 삶을 단층적으로 보여주는 장치

 

 


 

극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무대 가장가리가 유리벽으로 막혀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앞에도 언급했듯 인물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유리벽이 어떻게 세워져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음. 처음엔 사각형 무대 위에 4면 모두 유리벽을 세워서 어항 같은 구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상하수로 등퇴장을 하는 걸 보니 어딘가 뚫려있긴 한가보다. 아마도 관객이 보는 쪽 두 면에만 유리벽을 설치했던 것 같다 (예르마는 무대를 가운데에 놓고 관객석으로 앞뒤로 배치함)

 

 

 특이했던 점은 배우들이 벽 너머 관객을 응시하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 마지막 예르마가 죽는 순간까지도 예르마는 관객을 보지 않는다. 독백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 부분과 연결되는 특징인 것 같았다. 이 때문에 유리벽이라는 장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기분을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벽 안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외침,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가 -특히 주인공 예르마의 감정, 미쳐가는 과정 - 관객에게 직접 닿지 못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예르마의 삶에서 단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 배우들의 대화가 정말로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정도의 스피드로 흘러가고, 두서없는 말을 꺼내기도 하는데, 이런 대화방식이 정말 이웃집 담벼락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여담이지만 오디오가 계속 겹쳐들려서..진짜 평소에 말하는 것마냥 상대배우가 말할 때 다른 배우가 그 대사 끝날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냥 자기 말 말해버림. 영어인데다 자막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둘이 동시에 얘기할 때는 둘 중 한 사람 말만 해석해놓는 바람에 놓친 대사가 많았음. 너무 아쉬웠다.)

  



 임신 재생산과 임신



 

'출산'에 담긴 이야기출산은 곧 자신을 낳는 것이다. 예르마는 처음 자신의 자궁을 지칭할 때 "재생산기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 때까지만해도 아이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할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사회적 의미가 짙지만, 사회적 시선에 감싸인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이해될 수 있는) 아이에 대한 열망이었다면 점차 그 생각은 자신을 온전히 보아줄 사람을 갈구하는 근원적 욕망으로까지 나아간다. 결국 그는 재생산 기관에 불과했던 장기에, 자기 자신이 먹혀버림으로써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가 극중 "내가 세상을 만드는게 아니고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든다"고 했던 말은 어쩌면 예르마의 최후를 암시하는 부분이었을 수도 있겠다. 

 

또, 낙태를 했던 경험이 있던 예르마에게는 아이를 갖는 것이 자신의 과거를 새로이 만들어낼 어떤 탄생점?이 될 수도 있었겠다. 자기가 안고 있던 모든 과거의 기억을 새로운 탄생을 통해 자기 자신로 새로 탄생되는 의미도 어느정도 들어있지 않을까. 

 


 

 

 

/ 불모 / 결핍으로 메말라버린 땅

 

 

 

 


예르마의 결핍을 말하기 전에 우선 예르마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 예르마는 작은 신문사 사회면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블로그를 통해 광고수입을 얻을 정도로 꽤 블로그가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또 집이 그렇게 잘 사는 편은 아닌 것 같으며(working class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돈에 대한 집착이 있거나 집를 꾸미는 데 큰 열정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언니와 사이가 크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언니가 전형적인 바람둥이 남편과 연을 끊지 않고 계속 살고 있기 때문. 언니가 남편과 헤어지지 않는 이유는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제일 크고, 또 남편의 아이가 생겨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언니를 예르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 역시. 언니와 어머니 예르마의 관계는 겉보기에 나쁘지만은 않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원하는 예르마와 언니가 있다. 타인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것은 언니와 예르마 모두 마찬가지 모습인 듯하다. 언니는 남편에게서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고( 자기 아이는 끔찍이도 싫어하면서) 예르마는 어머니에게 안아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기 때문.

 

그의 캐릭터, -여기서 캐릭터의 의미는 인물이 살아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에게 새겨진(carved) 성향을 말한다. 어떤 상황을 거치면서 자신에게 남겨진, 그에 대응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틀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요소라는 의미에서의 캐릭터 말이다.-는 

 

 

이 극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결핍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무의식 속에 자리한 결핍으로 인해 어떤 소망을 갖게 되고, 자신만 결코 이룰 수 없는 그 소망에 집착하게 되면서 점점 메말라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이는 극이 상황을 진행하는 방식과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1장부터 예르마는 아이에 대한 소망을 얘기한다. 그 이후 2, 다시 11개월, 11개월이 지났음을 보여주고 관객은 일정 시간을 지난 후 변화해가는 예르마의 모습을 특정 장면을 통해서만 단편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 동안 그가 어떻게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는지, 주변인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기 위해선 예르마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내용 속에서 단서를 꼼꼼히 찾아야 한다. 그 찰나의 대화에서 우리는 예르마가 가진 아이에 대한 열망이 점점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욕심은 예르마의 언니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전 애인이 아이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전애인의 새 애인이 또다시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되면서 점점 커진다. 결핍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됐던 감정은 점차 남편에 대한 원망, 사회에 대한 거부 ,자신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면서 점점 깊이를 확장한다. 그의 감정선이 극에 다다랐을 때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왜 아이를 갖고 싶어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이후, 남편이 더 이상 인공수정을 위한 정자기증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예르마는 분노하며 그렇다면 다른 정자를 쓰면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목은 예르마가 왜 아이를 갖고 싶어했는지 자기 내면의 심정을 털어놓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를 광적으로 갖고 싶어하면서도 당신의 정자가 없으면 다른 정자를 가져오면 된다고, 즉 남편의 아이가 아니어도 된다고 소리치는 이유는 사실 예르마가 남편과의 사랑의 결실로써의 아이가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을 채워줄 존재, 예르마 그 자신만을 바라봐 줄 존재로 아이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극 중에서 "난 괜찮아!" 를 신경질적으로 반복했던 예르마는 결국 자신이 사라지고 자궁만이 자신을 대변하는 상태에 이르러 자궁을 찌름으로써 자신을 살해하고 만다. 

 

  

<감상평>

 

사실 예르마가 갖는 결핍이 어떤....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물론 무의식 속에 자리한 가족애와 조건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었겠지만그 점이 의미있게 부각되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자신을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음을 지적하고어머니가 마지못해 예르마를 안아준 후그가 충격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그 일에 대해 어떤 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평이한 다음 대화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임. <- 사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서 그런 걸수도 있고..한번 더 보고 싶다ㅠㅠ) 그렇기 때문에 극작이 말하고 싶어했던 메세지가 도대체 뭐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르마가 극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폭우가 내려도 아무것도 싹틔울 수 없었던 땅, 그렇게 텅 비어있던 무대가 아이가 나타나가 소파와 가구, 어질러진 장난감 등으로 가득찬다. 그런 충만감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슬프고 어려운 극이었다.



국립극장, NT Live <헤다 가블러> 5월 상영! 





헤다 가블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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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에서 관객 모니터링단을 모집한다고 한다. 49일까지니까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천천히 지원서 써봐야지.

 

모집 대상 조건에 "창작극에 목소리를 보태고 싶은 분"이라는 조건이 있는데, 목소리 보태는 걸 넘어서 만들고 싶은 분 여기 있으니 극 만들게 해주세요!!(쩌렁쩌렁) 외치고 싶음

 

 

아래는 국립극단 홈페이지에서 그대로 퍼온 공고문

 

 

 

국립극단 관객모니터단 모집 공고 링크 : http://www.ntck.or.kr/ko/content/board/notice/41282/form?

요즘 국립극단에서 하는 연극에 꽂혔다. 한 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후원해준 창작산실만 주구장창 보다가 창작산실 시리즈가 거의 끝나서.....시선을 돌리다 보니 국립극단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덕분에 국립극장에서 하는 NT Live 레파토리도 알게됐고!

 

그 덕에 보게 된 <예르마>는 정말 좋은 작.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도 진짜로 보고싶었는데 3.31-4.1 이틀밖에 하지 않아서인지 벌써 매진이더라ㅠㅠ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아무튼, 오늘은 카프카 <> 보러갈 예정. 명동예술극장에서 하니까 학교에서도 가깝다.

 

 

 

 

 

사실 구태환 연출님 공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카프카 <심판> 2007 프로덕션에서 극찬을 받았다길래 기대 만발이다. 문제는 내가 카프카 소설이라곤 변신 밖에 안 읽은 카프카 문외한이라...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소설 <>도 아직 읽지 않았지만 공연 소개 사진에서 보여준 무대가 너무 기대됨. 저 문들을 어떻게 활용하는걸까. 인물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화하게 될까 궁금.

 

 

 

다녀와서 얼른 후기를 써야지!! 이번 주만 벌써 세 번째 관극. 후기 쓰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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